1982년 아이다호의 한 성당에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돼 40년 넘게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던 남성의 정체가 확인된 가운데 수사당국은 이 남성이 미 최악의 미제 사건 중 하나인 ‘타이레놀 살인사건’과 연관됐을 가능성을 놓고 추가 조사에 나섰다.

아이다호주 애이다(Ada) 카운티 셰리프국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미스터리 방랑자(Unknown Wanderer)’로 불렸던 남성이 매튜 프랜시스 베트코스키 박사(Dr. Mathew Francis Betkouski)였다고 발표했다.

베트코스키는 시카고 일대에서 청산가리가 든 엑스트라 스트렝스 타이레놀(Extra-Strength Tylenol) 캡슐을 복용한 주민 7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불과 몇 달 뒤인 1982년 12월 4일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세이크리드 하트 가톨릭 성당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검시관은 그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결론지었지만,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아 오랫동안 신원이 미궁에 빠져 있었다.

단서가 된 플로리다 실종 사건

베트코스키의 신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는 그가 남긴 유서와 타이핑된 문서였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문서에는 ‘Wm. L. Toomey’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상당한 액수의 현금도 가지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이 단서를 추적해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한 주택가로 수사를 확대했다.

그곳에서 1982년 한 부동산 소유자가 갑자기 사라졌으며 이후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수사관들은 LA 지역에 생존해 있던 베트코스키의 형제를 찾아 DNA를 확보했다.

이를 ‘미스터리 방랑자’의 DNA와 비교한 결과 두 사람이 같은 아버지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관들은 사진도 추가로 비교한 뒤 보이시에서 숨진 남성이 베트코스키라는 결론을 내렸다.

LA에서 태어난 베트코스키

베트코스키는 1943년 LA에서 태어났으며 가족 역시 LA와 깊은 연고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LA시의회 의장을 지냈고, 아버지는 LA수도전력국(LADWP)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베트코스키는 1965년 로욜라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뒤 데이턴 대학교 화학과에서 조교로 일했다.

이후 오하이오주로 이주해 훗날 아내가 된 여성을 만났으며, 결혼 후에는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게인즈빌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후 이혼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베트코스키는 대학 재학 당시 두 곳의 약국에서 일하며 약국 운영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수사관들은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와 10여 통의 개인 편지도 검토했다.

‘완전범죄’와 청산가리에 관심

수사 과정에서 베트코스키의 주변 인물들은 그가 과거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살해하는 방법으로 청산가리를 언급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가 폭발물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또한 베트코스키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에서 청산가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해당 물질은 그의 형제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수사관들은 이 물질이 직접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타이레놀 살인사건에 사용된 청산가리와는 다른 화합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황을 바탕으로 아다카운티 수사관들은 베트코스키가 1982년 타이레놀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타이레놀 살인사건과 연결고리 있나

1982년 시카고 지역에서는 청산가리가 고의로 주입된 엑스트라 스트렝스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주민 7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미 전역에 큰 충격을 줬으며 대규모 제품 리콜로 이어졌다.

이후 소비자 제품의 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안전 포장 방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40년이 넘도록 누구도 살인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수사당국은 베트코스키가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애이다 카운티 셰리프국 역시 그를 공식적인 용의자로 지목하지 않고 있다.

베트코스키는 일리노이나 시카고 인근에 거주한 적이 없으며, 독극물 사건이 발생한 당시 그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 자료를 통해 그가 사건 발생 약 1년 전 시카고 지역을 방문했던 사실은 파악됐지만, 1982년 다시 시카고를 찾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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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 County Sheriff's Office

수사당국, 시카고 경찰에 자료 전달

애이다 카운티 수사당국은 지금까지 확보한 자료를 시카고 경찰에 전달했다.

시카고 경찰은 아이다호 수사관들과 접촉하며 베트코스키의 신원과 행적이 기존 타이레놀 살인사건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베트코스키가 현재 용의자로 분류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1982년 당시 FBI의 타이레놀 사건 수사에 자문했던 법정 신경정신의학 전문가 박 디츠 박사는 아다카운티 수사 결과를 검토한 뒤 베트코스키를 사건의 가능한 용의자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디츠 박사는 애이다 카운티의 팀 쿠퍼 형사가 2021년 자신에게 수사 자료를 공유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말에는 베트코스키가 타이레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982년 행적 추적이 핵심

수사관들은 베트코스키의 신원이 확인된 만큼 이제 그의 1982년 행적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그가 보이시에서 사망하기 전인 1982년 10월 15일부터 12월 4일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쿠퍼 형사는 베트코스키가 생전에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오하이오, 플로리다 등 5개 주에서 살았다며, 그의 이야기가 공개되면 해당 기간 그의 행적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제보가 들어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원 확인과 수사 내용은 오는 10월 9일 공개될 예정인 ‘Unsolved Mysteries’ 다큐멘터리 ‘Unmasking the Tylenol Killer’에서도 다뤄질 예정이다.

애이다 카운티 셰리프국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번 발표에 공개되지 않은 추가 증거도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는 베트코스키와 1982년 타이레놀 살인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입증된 것은 아니며, 시카고 경찰의 냉수사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