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에서 자동 차량 번호판 판독기(ALPR) 기술의 규제를 둘러싼 입법 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경찰의 차량 번호판 데이터 보관 기간을 제한하고, 타주 그리고 연방 기관과의 데이터 공유를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SB 1013을 두고 찬반 양측이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경찰 “범죄 해결에 없어서는 안 될 기술”
캘리포니아주 전역의 39개 경찰 기관과 경찰노조는 이번 규제 법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이 2000년 이후 입법 캠페인 등에 지출한 자금만 최소 56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 측은 이 기술이 살인범, 은행 강도, 뺑소니범 검거와 실종자 수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 사례로 지난 5월 오렌지카운티 터스틴 거리에서 한 여성이 총격으로 숨진 사건이 있다.
당초 전 남편이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았지만, 시 전역에 설치된 102대의 번호판 판독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남편의 알리바이가 입증됐다.
경찰은 단 나흘 만에 진범인 전 남자친구를 멕시코 국경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더해 버클리 경찰도 지난해(2025년) 차량번호판 인식 카메라 52대를 설치한 이후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121건의 사건 수사에 활용됐으며 58건의 체포와 37대의 도난 차량 회수에 기여했다.
특히 강도 사건 해결률은 2024년 34%에서 이듬해 49%로 상승했으며, 경찰은 차량번호판 데이터가 이러한 개선에 일부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보호단체 “누구나 이동 경로가 기록될 수 있어”
반면 민간인권단체와 진보·보수를 막론한 프라이버시 옹호론자들은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이 시민 감시로 이어진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몬트레이 카운티에서는 한 주민이 경찰의 번호판 판독 카메라 3대를 트럭으로 들이받아 끌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인권 단체들은 캘리포니아 경찰이 번호판 데이터를 주 외부에 공유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해 온 점을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 텍사스주의 한 경찰관이 전국 번호판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을 추적하려 했던 사실이 보도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낙태를 범죄화한 보수 성향의 주 정부들이 캘리포니아의 번호판 데이터를 원정 낙태 환자나 의료진을 처벌하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공포가 현실화된 것이다.
규제 법안의 핵심 내용과 개정 방향
이번 법안을 발의한 리버사이드 지역 민주당 소속 사브리나 세르반테스(Sabrina Cervantes) 주 상원의원은 차량번호판 인식기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개인정보와 안전을 보호하면서 법 집행기관이 해당 기술을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경찰기관은 원칙적으로 차량번호판 데이터를 30일까지만 보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된 데이터나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에 사용되는 데이터는 예외적으로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하고, 경찰관에 대한 교육과 데이터 검색 기록 관리도 강화하도록 했다.
특히 연방 또는 다른 주의 경찰기관이 별도의 접근 절차 없이 차량번호판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경찰·셰리프 기관이 카메라 업체와 체결하는 것도 금지할 예정이다.
이번 법안은 지난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과 유사하다.
당시 뉴섬 주지사는 60일 데이터 폐기 시한이 장기 미제 사건 수사를 방해할 수 있고, 법무부 감사에 필요한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올해 발의된 개정안은 뉴섬 주지사의 우려를 반영해 실종자 수색 목적의 데이터 보관을 허용하고, 주 정부 차원의 감사를 향후 예산 확보 조건부로 변경했다.
뉴섬 주지사가 올해(2026년) 법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 법안은 현재 공화당 의원들의 전원 반대 속에 하원 재정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연방 의회로 번진 논쟁…‘Don’t Flock me’
이 논쟁은 캘리포니아주를 넘어 연방 차원으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공화당 소속 토마스 매시(Thomas Massie) 연방 하원의원은 최근 미국 독립의 상징인 개스던 깃발(‘Don’t Tread on Me·나를 밟지 마라’)을 패러디해 카메라가 뱀을 감싸고 있는 ‘내 번호판을 찍지 마라(Don’t Flock me)’ 밈을 공유했다.
‘플록(Flock)’은 유명 자동 차량 번호판 판독기 제조업체인 ‘플록 세이프티(Flock Safety)’의 사명에서 따온 말이다.
매시 의원은 "법을 준수하는 일반 시민을 감시하기 위해 플록 등 번호판 판독 카메라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에 연방 정부 지원금을 중단하는 법안을 곧 발의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인권단체 오클랜드 프라이버시(Oakland Privacy)의 트레이시 로젠버그는 "경찰의 수사 편의성은 인정하지만, 카메라가 지나치게 편재해 있다"며 "경찰이 방대한 데이터 산을 영구적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며, 인간에게는 카메라가 없는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