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Labor Day weekend)를 앞두고 남가주에 허리케인에서 약화된 열대성 폭풍이 접근해 홍수를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상당국과 전문가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동부 태평양에서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 반도 남쪽 해상에서 발달 중인 열대폭풍 ‘마리(Marie)’의 진로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오늘(1일) 마리가 내일(2일)까지 허리케인으로 발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샌디에고 국립기상청(NWS)은 현재로서는 폭풍이 서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북쪽으로 이동해 남가주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약화된 폭풍’

UC의 기후과학자 대니얼 스웨인은 남가주가 직접 허리케인의 상륙을 맞는 상황이 가장 현실적인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마리가 북쪽으로 이동한 뒤 세력이 약해져 열대폭풍 이하 수준으로 남가주에 접근할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라는 분석이다.

스웨인은 이 경우 강한 바람보다는 많은 수증기를 동반한 비와 소나기, 뇌우가 남가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안에서는 높은 파도가 발생해 위험한 해상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샌디에고 국립기상청의 세바스찬 웨스터링크 기상학자도 마리가 남가주에 도달할 때는 허리케인은 물론 열대폭풍 수준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람’보다 ‘비’

전문가들은 이번 폭풍에서 강풍 자체가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스웨인 기상학자는 이번 시스템의 바람이 강한 겨울 폭풍 때 경험하는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며, 창문을 막거나 대규모 강풍 대비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폭우가 내릴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산악지역에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돌발홍수와 산사태, 토석류가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남가주 일부 지역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질 경우 피해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기상청 옥스나드 지국 역시 광범위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현재 낮은 수준이지만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cover-image
NWS LA

주말 해안에는 높은 파도·해안 침수 우려

비뿐만 아니라 해안지역에서는 높은 파도와 해안 침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립기상청은 폭풍으로 발생한 남쪽 방향 너울이 빠르면 오는 금요일부터 남가주 해안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번 주말에는 이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만조 시기와 겹칠 가능성이 있어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

옥스나드 국립기상청의 크리스탄 룬드 기상학자는 남쪽을 향한 해안에서 중간 또는 큰 규모의 파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평소보다 높은 조위와 겹칠 경우 해안 침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힐러리’와 비슷한 상황 가능성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가능성은 2023년 허리케인 ‘힐러리’ 당시와 비슷한 경로다.

당시 힐러리는 남가주에 직접 허리케인으로 상륙하지 않았지만, 세력이 약화된 열대성 저기압이 남가주로 이동하면서 상당한 비를 뿌렸다.

코첼라 밸리와 샌버나디노 카운티, 데스밸리 국립공원 등이 큰 영향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허리케인 힐러리 관련 피해액은 약 9억 달러에 달했으며, 멕시코 바하 칼리포르니아 수르에서도 최소 1,400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마리가 남가주 쪽으로 이동한다면 허리케인 자체보다는 약화된 시스템이 몰고 오는 수증기와 집중호우가 더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가주에 열대폭풍이 상륙하는 것은 매우 드물어

남가주에 열대폭풍이나 허리케인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대 기상 기록상 캘리포니아를 열대폭풍 세력으로 통과한 사례는 두 차례 정도다.

1939년 9월에는 ‘엘 코르도나소(El Cordonazo)’로 불린 폭풍이 롱비치와 샌페드로 지역을 강타했다.

당시 LA에는 사흘 동안 5.62인치의 비가 내렸고 최대 순간풍속은 시속 65마일에 달했다.

지상에서 홍수로 45명이 숨졌으며 해상에서도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9월에는 허리케인 ‘노라’가 캘리포니아-애리조나 국경을 따라 이동하면서 잠시 열대폭풍 세력을 유지했다.

임페리얼 카운티와 코첼라 밸리, 샌디에고 등에서는 도로 침수가 발생했고, 실비치에서는 높은 파도로 주택들이 피해를 입었다.

바다 온도와 ‘슈퍼 엘니뇨’도 변수

이번 상황에는 태평양의 이례적으로 높은 해수면 온도와 발달 중인 강한 엘니뇨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엘니뇨는 중·동부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기후 현상으로, 동부 태평양에서 허리케인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현재 남가주 해역 역시 평년보다 따뜻한 해양 열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가주와 북부 바하 칼리포르니아 앞바다의 수온은 일반적으로 허리케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웨스터링크 기상학자는 남가주 해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확실히 높지만 허리케인이나 열대폭풍이 세력을 유지하기에는 여전히 충분히 따뜻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열대성 폭풍의 ‘폭우’ 위험 커질 수도

전문가들은 남가주가 열대성 저기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 자체는 낮지만, 폭풍이 가져오는 폭우 위험에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힐러리와 같은 열대성 저기압의 극단적인 강수 위험이 앞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기온 상승으로 열대성 저기압이 남가주에 가져오는 강수량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으며, 2050년까지 인구 증가와 맞물려 열대성 폭풍으로 인한 폭우와 산사태에 노출되는 인구도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는 ‘가능성’ 단계…진로 변화 주목

현재로서는 마리가 남가주에 직접 상륙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로는 폭풍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지만,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가주에 수증기와 비, 높은 파도를 가져올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앞으로 며칠간 폭풍의 이동 경로와 세력 변화를 집중적으로 관찰할 예정이며, 노동절 연휴를 앞두고 남가주 주민들도 최신 기상 예보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