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터프런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에바 마리 세인트가 102세로 별세했다. 영화와 TV를 오가며 활동한 그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도 주연을 맡았으며, 생존한 오스카 수상자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에바 마리 세인트 가족 대리인 제프 샌더슨은 세인트가 6일 LA 자택에서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세인트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 가운데 마지막까지 생존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세인트는 1954년 엘리아 카잔 감독의 범죄 드라마 ‘워터프런트’로 영화에 데뷔해 곧바로 오스카를 받았다. 그가 연기한 이디 도일은 영화의 도덕적 중심을 이루는 인물로, 말런 브랜도가 맡은 권투선수 출신 부두 노동자와 사랑에 빠진다.
세인트는 2013년 터너 클래식 무비스(TCM) 인터뷰에서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펼쳤던 브랜도가 사랑스럽지만 조금 두렵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가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스카 수상 당시 임신 9개월이었던 세인트는 무대에서 “여기서 아기를 낳을지도 모르겠어요!”라고 농담했다. 실제로 그는 수상 이틀 뒤 아들을 낳았다.
5년 뒤에는 히치콕의 첩보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이브 켄들을 연기했다. 켄들은 사건에 휘말린 광고회사 임원 역의 캐리 그랜트를 위험한 유혹으로 이끄는 인물이었다.
히치콕의 냉정하고 계산적인 여주인공으로 세인트를 기용한 것은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세인트는 히치콕이 머리와 화장부터 신발·장신구·가방·장갑까지 외양을 세심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여성 스파이라는 감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론가들이 켄들 역을 두고, 이후 007 영화의 여러 여성 인물이 따르게 된 세련되고 성적으로 자신감 있으며 지적인 금발 여성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해 왔다고 전했다.
1924년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난 세인트는 처음에는 교사를 꿈꾸다가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다. 뉴욕의 허버트 버그호프 스튜디오와 카잔이 공동 설립한 메소드 연기의 산실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수련한 뒤, 1940년대 후반 생방송 TV 프로그램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세인트는 1960년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엑소더스’에서 폴 뉴먼과, 존 프랭컨하이머 감독의 ‘올 폴 다운’에서 워런 비티와 함께 출연했다. 이후에는 남편인 감독 제프리 헤이든과 자녀를 키우며 연기 활동을 줄였다.
TV에서도 성과를 남겨 1990년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미니시리즈 ‘피플 라이크 어스’로 에미상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부유한 미망인 릴 밴 디건 앨터머스를 연기했다.
80대였던 2006년에는 ‘슈퍼맨 리턴즈’에서 클라크 켄트의 양어머니 역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이후 콜린 패럴과 러셀 크로가 출연한 초자연 판타지 ‘윈터스 테일’, 2019년 수녀를 다룬 드라마 ‘마리에트 인 엑스터시’에도 출연했다.
영화와 TV 활동으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별 두 개를 남긴 세인트는 오랜 삶의 경험이 연기를 깊게 해줬다고 말했다. TCM 인터뷰에서는 삶에서 여러 감정을 겪으며 사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더 나은 배우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세인트와 헤이든의 결혼 생활은 헤이든이 20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65년간 이어졌다. 유족으로는 두 자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