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앞에서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경험, 당신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최대 소매업체 중 하나인 홈디포(Home Depot)가 바로 이 소비자 심리 위축 현상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소비자들, 지갑을 닫다
홈디포는 꽤 오랫동안 걱정스러운 소비 트렌드와 씨름해왔다. 회사의 공시 자료와 실적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핵심 문제는 바로 소비자들이 선택적 지출(재량 소비)을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홈디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의 최근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광범위한 선택적 구매 전반에 걸쳐 지출을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방문객 분석 업체 플레이서 AI(Placer.ai)의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홈디포 매장당 평균 방문 횟수가 전년 대비 0.6% 감소했으며, 이는 경쟁사 로우스(Lowe's)의 0.4% 감소보다 더 가파른 하락세다.
여기에 고금리 여파로 주택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고가 제품 판매도 줄었다.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이 대형 인테리어·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압박, 끝이 보이지 않는다" — 홈디포 CFO
홈디포는 최근 골드만삭스 글로벌 소비자·유통 컨퍼런스에서 미국 소비자의 현실을 냉혹하게 진단했다.
리처드 맥페일(Richard McPhail) CFO는 소비자들이 심각한 재정적 압박 속에서 대형 리모델링 프로젝트 대신 기본적인 유지·보수로 소비를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처드 맥페일 CFO는 "거시경제 전반을 살펴봐도, 우리가 주시하는 지표 어디에서도 변곡점을 찾기 어렵다. 지난 6분기 동안 소비자의 부담은 계속해서 커져왔다."며 최근의 소비 위축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고장 난 것만 고친다" — 생존형 소비로의 전환
경제가 어려울 때 소비자들은 지출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지만, 지출 방식을 바꾼다.
맥킨지의 2026년 8월 소비자심리 보고서에 따르면, 홈 인테리어 분야의 구매 의향 감소폭이 특히 두드러졌다.
- 홈 데코: –32%
- 액세서리: –30%
- 가구: –29%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wants)'에서 '필요한 것(needs)'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수도관이 터지면 어쩔 수 없이 수리하지만, 선택적 인테리어 공사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맥페일 CFO는 이렇게 분석했다.
"소비자들은 지금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 금리, 유가, 고용 불안… 대형 프로젝트에 큰돈을 쓸 준비가 아직 안 됐다는 것이다. 수요가 반등한다는 신호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머천다이징 총괄 부사장 윌리엄 바스텍(William Bastek)도 소비 패턴의 대전환을 확인했다. 그는 현재 성장을 이끄는 것이 배관, 전기, 철물, 공구 같은 필수 유지보수 카테고리라고 밝혔다.
"플러밍(배관), 전기, 철물, 공구 부문이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아주 좋은 성과를 거뒀다."
홈디포의 대응 전략: 가격 동결 + 초고속 배송
① 가격 안정화 화려한 할인 행사 대신, 매일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관세 환급금 등을 활용해 가격 인상 요인을 내부에서 흡수했다.
"우리의 목표는 매일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프로모션을 줄이고, 하반기에도 지금의 가격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 바스텍 부사장
② 초고속 배송 확대
- 소형 택배의 **65%**는 당일 또는 익일 배송
- 대형·중량 제품의 **55%**는 2일 이내 배송
홈디포의 목표는 전체 매장 취급 품목의 대부분을 2시간 이내 배송하는 것이다.
"매장 내 대부분의 상품을 2시간 이내에 배송하는 것이 목표이며, 매일 그 시간을 더 줄여나가고 있다." — 맥페일 CFO
③ AI 활용으로 현장 직원 역량 강화 홈디포는 AI 기반 전화 응대 시스템을 도입해 일반 고객 문의를 기존보다 4배 빠르게 처리하고 있다. 덕분에 매장 직원들이 고객 응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지갑이 얇아진 미국 소비자들, 그리고 그에 맞춰 변화를 꾀하는 홈디포. 미국 소비 시장의 냉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