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통적인 결혼 선물 문화인 '웨딩 레지스트리(gift registry)'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치솟는 주택 가격과 고금리로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냄비나 식기 같은 생활용품 대신 신혼집 마련에 보탤 현금을 직접 요청하는 예비부부가 급증하는 추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택 구입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결혼 하객들에게 주택 다운페이먼트나 이사 비용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고 어제(27일) 보도했다.

온라인 결혼 준비 플랫폼 '졸라(Zola)'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예비부부 8쌍 중 7쌍(약 87.5%)이 선물 목록에 현금 수령 항목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이들 중 약 40%는 하객들에게 받은 현금을 주택 구입 자금이나 주거 이전 비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예비부부가 특정 매장이나 온라인 사이트에 원하는 물품 목록을 등록하면 하객들이 이를 선택해 구매해 주는 레지스트리 문화가 보편적이다.

주로 가전제품, 수건, 식기류 등이 상위에 올랐으나, 최근 가파르게 오른 집값이 이 같은 관습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 자료에 따르면 전국 기존 주택 중위 가격은 2020년부터 2025년 사이에 약 40% 올랐다.

여기에 주택 모기지 금리마저 다시 7%대를 넘어서면서 청년층의 자가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다.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에 거주하는 애나 그레이스 니모·맷 드레슬러 부부는 지난 5월 예식을 올리며 레지스트리에 '내 집 마련 기금' 항목을 따로 만들었다.

이들은 하객들로부터 총 2,000달러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니모는 "요즘 세대는 주택 구매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데 거부감이 없다"며 "단순히 봉투에 현금을 담아 주는 것보다 특정 목적을 위해 모금하는 방식이 하객 입장에서도 진정한 선물로 느껴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결혼 축의금이나 모금액을 주택 모기지 대출의 다운페이먼트로 사용할 경우 금융기관의 확인 절차가 까다로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모기지 대출 기관은 해당 자금이 채무가 아닌 순수 증여금인지 확인하기 위해 증여 확인서(gift letter)와 계좌 이체 내역, 거래 기록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서류 절차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대출 신청 최소 60일 전에 해당 자금을 계좌에 입금해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현금 선물을 요청할 때 하객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에티켓 전문가 마이카 마이어는 "여전히 물품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어 하는 하객이 있을 수 있으므로 현금 외에 일반 선물 항목도 함께 올려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단순히 돈을 달라고 하기보다는 주택 마련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하객들의 공감을 얻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