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지능(AI)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 즉 "로봇이 도시로 진군해 우리를 모두 제거할 것"이라는 걱정을 '사기(Hoax)'라고 규정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러시아의 대선 개입 수사, 1기 재임 시절 탄핵 시도 등 자신이 가장 강하게 조롱해 온 대상에 붙여 온 표현이다.

스스로를 '사기 분쇄자'라 칭한 트럼프 대통령은 잇단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AI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 발전 엔진"이라고 전폭적으로 옹호하며 회의론자들을 비난했다.

최근 몇 주 사이 회의론자의 대열은 크게 늘고 있다. 문명을 위협할 수준의 위험까지는 아니더라도 AI의 파괴적 영향에 대한 불안이 업계 내부와 정치권,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안에서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오랜 우군과 충돌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백지수표는 안 된다"… 배넌과 샌더스의 이례적 공조

트럼프 대통령의 전 수석전략가이자 최측근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어제(9월15일) AI 위험을 주제로 한 '인간 우선(Pro-Human)' 콘퍼런스에서 "훌륭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들에게 백지수표를 줄 수는 없다"며 "아무런 논쟁도 없었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은 워싱턴 정책 당국이 규제되지 않은 AI의 "잠재적으로 재앙적인 결과"를 다루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집권 시절 의회는 졸고 있었다.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한 무지가 참으로 부끄러운 대통령까지 있다"고 비판했다.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강한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필요한 것이 논쟁이나 새 정책이 아니라 자신의 권한과 판단에 대한 신뢰라고 주장한다. 그는 "AI에 필요한 유일한 통제나 '가드레일'은 강하고 똑똑한(높은 IQ!) 대통령뿐이며, 미국은 그런 대통령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이 기업들에 대해 막강한 형사·규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썼다.

대통령 권한의 집중은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익숙한 주제다. 좋다고 판단하면 허용하고, 나쁘다고 판단하면 대통령 명령으로 끝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입국해 체류할 수 있는지, 언제 어디에 관세를 부과할지를 대통령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이민·통상 정책 시각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수십 년간 관심을 가져온 관세·이민과 달리 AI는 최근에 부상한 이슈다. 오랜 신념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를 이토록 강하게 밀어붙이게 하는 걸까.

이유 ① '가장 뜨거운 경제'의 엔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라고 자주 자랑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프라와 장비를 포함한 AI 투자가 최근 수년간 미국 경제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예측기관 ING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미국 경제 성장의 3분의 1 이상이 기술 투자에서 나왔다.

주식시장 호황 역시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지출에 상당 부분 기인하며, 이는 많은 미국인의 퇴직연금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대표 업적이자 정치적 유산의 핵심으로 여기는 이 성장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곧바로 그의 의심을 산다.

이유 ② 美·中 패권 경쟁

트럼프 대통령은 AI 확장을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규모 산업 경쟁으로 본다. 제로섬 게임인 세계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앞서면 미국은 뒤처진다는 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토) "우리는 AI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고, 솔직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AI에서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이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좌파 반대 세력이 자유시장에 반대하며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포를 조장한다는 보수 진영의 익숙한 주장을 자주 펼친다. 물론 US스틸과 인텔의 지분 일부를 정부가 보유한 것을 자랑하고 경제의 승자와 패자를 거리낌 없이 고르는 트럼프 대통령을 전통적 '작은 정부' 보수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유 ③ 테크 거물들과의 밀착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부터 이어진 테크 거물 및 AI 기업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도 그의 'AI 전도'를 설명하는 요인이다.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의장이자 비공식 'AI 차르'로 불리는 기업가 데이비드 색스는 오랜 지지자로, 그가 공개적으로 밝힌 AI 규제 회의론은 최근 대통령의 발언과 판박이다. 색스는 지난 주말 CBS 인터뷰에서 "이건 패닉이 되어가고 있다. 선거철이라 정치 행위자들이 공포를 증폭시킬 유인이 있다"고 말했다.

관계가 순탄치 않았던 일론 머스크도 트럼프 행정부의 방향에 영향을 미쳤고,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오픈AI의 샘 올트먼, 전 애플 CEO 팀 쿡은 취임식 주요 좌석에 앉았다. 이들과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AI 규제 필요성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접근권과 영향력도 다르다. 아모데이의 경우 국방부의 앤스로픽 AI 모델 무제한 사용을 둘러싼 갈등이 그의 'AI 개발 속도 조절' 주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기술기업 애피언의 맷 캘킨스 CEO는 "이것은 업계 전체에서 처음부터 가장 두드러진 논쟁이었다"며 "언젠가 정치로 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눈치 보기… "말이 싸지 않은 순간 올 수도"

논쟁이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 속에 의회가 청문회와 규제안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서명할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낮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어제(9월15일) 연방의회 차원의 조치에 열려 있던 기존 입장에서 물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AI 사기론'을 되풀이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여야 후보들은 AI의 약속된 혜택에 회의적인 여론의 반대편에 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동시에 공화당은 대통령의 정치적 시금석이 된 이슈에서 그와 충돌하는 것도 꺼린다.

캘킨스 CEO는 대중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 문제가 '정치적 뇌관'은 아니어서 정치적 수사에 큰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AI 경고가 대형 재난으로 현실화하는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그는 "미래의 사건이 대중을 각성시킬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입장과 말이 그렇게 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