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위해 대러 제재를 일시 면제하기로 한 데 이어, 이에 반발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새 지도자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트럼프는 경유 가격 상승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에 돌리며 공급 합의를 맺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10일(현지시간) 테네시 유세를 위해 출발하기 전 기자들에게 젤렌스키가 여러 협상을 성사시킬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상을 타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를 세울 것을 권한다”며 “우크라이나가 새 대통령을 맞을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전날 트루스 소셜에서 발표한 합의는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 시장에 경유 30만t 이상을 즉시 공급하는 내용이다. 그는 푸틴과 통화한 뒤 러시아가 11월에 50만t, 이후 100만t과 추가 300만t을 순차적으로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며, 기자들에게 “솔직히 푸틴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에너지 기반시설을 공격해 세계적인 경유 부족을 일으켰다는 입장이다. 이날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정유 시설을 타격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젤렌스키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며, 경유 문제로 농민과 목축업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미국 측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정유 시설을 공습하지 말라고 여섯 차례 요청했다는 미국 당국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트럼프가 러시아산 경유를 들여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물가와 이란 관련 대응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직면해 있다. AP는 미국인들이 물가 상승의 책임을 트럼프에게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AP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지난달 24~28일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65%는 높은 물가의 책임이 트럼프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보다 그의 정책에 있다고 답했다. 이란전이 싸울 가치가 없었다는 응답도 69%에 달했다.

민주당은 러시아와의 거래를 강하게 비판했다. 척 슈머 연방 상원 원내대표는 발표 직후 엑스(X)에 트럼프가 위태로운 정치적 처지에서 벗어나려 “악마와 거래했다”며 이번 합의를 “더러운 거래”라고 불렀다.

유럽에서는 경유 제재 완화가 러시아의 전쟁 재원을 늘릴 것이라는 반발이 나왔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0일 러시아가 전쟁을 치를 수입을 더 얻게 된다며 “지금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완화할 때가 아니다. 유럽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총리실은 앤디 버넘 총리가 젤렌스키와 통화하고 대러 제재를 계속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발표했다. 독일 정부 대변인도 AFP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제재 유지 방침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자력 방위를 위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유 거래 발표는 우크라이나·유럽과 미국의 종전 협의가 진행되는 도중 이뤄졌다. 로이터통신은 관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와 유럽 당국자들이 9일 마이애미에서 미국 측 협상단과 전쟁 종식을 위한 공동 제안을 논의하던 중 트럼프가 합의를 발표했으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측이 허를 찔렸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합의 다음 날인 10일 새벽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자포리자의 여러 장소를 동시다발적으로 공습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6세 여아 등 어린이 3명을 포함해 20명이 숨졌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자포리자의 주거용 건물에 활공폭탄 5발을 투하했다며, 이를 디젤 수출 제재 해제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비꼬아 트럼프를 비판했다. 로이터는 이번 공격이 그 주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세 번째 공습이며, 앞서 7~8일 러시아의 공격으로 민간인 약 8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