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어도 의료비 부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정책 변화가 맞물리면서 보험료와 의료비 부담이 동시에 치솟고, 수백만 명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선택을 하고 있다.

"시급 2달러 올랐더니 보조금 전부 날아갔다"

USA Today 지 보도에 따르면 동북부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43세 린 웨이드너(Lynn Weidner)는 올해(2026년) 초 오바마케어(ACA·적정보험법) 보조금이 만료되면서 보험료가 크게 오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나마 케어기버 프로그램에서 받은 임금 인상분으로 추가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수입이 늘면서 오히려 ACA 보조금 수급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ACA는 개인 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4배, 즉 약 6만 3,840달러를 초과하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녀의 보험료는 지난해(2025년) 월 400달러에서 올해 865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시급이 2달러 올랐는데,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전부 잃었어요." 웨이드너의 말이다.

뇌성마비를 앓는 장기 동반자의 전임 케어기버로 주 80시간을 일하고,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두 살배기 조카도 무급으로 돌보는 그녀는 현재 월세 1,600달러짜리 앨런타운 교외 아파트에서 세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치료비 부담으로 주 1회이던 심리 상담도 격주로 줄였다.

보험이 있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매년 새로 시작되는 공제액(Deductible)을 채울 때까지 의료비가 계속 쌓이는 구조 탓이다. 웨이드너는 매달 210달러를 납부하지만 의료비를 모두 갚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보험이 있는데도 항상 의료비 빚을 달고 살아요. 연말이 되면 거의 다 갚았나 싶으면 또 새로 시작되는 거죠."

보험료·의료비 동반 폭등…소득과 역주행

이것은 웨이드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웨스트헬스-갤럽(West Health-Gallup)의 6월 설문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도 안 되는 비율만이 의료 서비스, 진료, 처방약을 감당할 수 있다고 답했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1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ACA의 팬데믹 시기 강화 보조금이 올해 1월 1일 만료되면서 올해만 300만 명 이상이 ACA 가입을 포기했다. 2026년 2월 기준 ACA 가입자는 1,920만 명으로, 올해 1월 2,310만 명에서 급감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부정 가입으로 판단한 약 76만 명의 보조금도 중단했다.

직장 의료보험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KFF의 연례 고용주 의료보험 혜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고용주 제공 가족 의료보험의 평균 비용은 2만 8,000달러 이상으로, 직원 공제액은 9% 급등한 반면 평균 임금 인상률은 3.7%에 그쳤다. 컨설팅 회사 AON은 2027년 직장 의료보험 비용이 평균 9.5% 상승해 20년 만에 가장 빠른 인상 속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암 완치 판정 받았지만…청구서는 여전히 날아온다

휴스턴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는 제니퍼 조브(Jennifer Jobe·43세)는 5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과 항암 치료, 유전자 검사, 정기 스캔 등을 거쳐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직장을 통해 안정적인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연간 본인 부담 상한액이 8,000달러인 고공제 플랜이다. 단 한 번의 항암 치료만으로도 이 상한액을 가볍게 초과했다.

치료 기간 동안 크라우드펀딩(GoFundMe)과 의료기관인 MD앤더슨(M.D. Anderson)의 환자 지원 프로그램 덕에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끝난 지금도 약 4,000달러의 미납 의료비가 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은 추심 단계로 넘어갔다.

제니퍼 조브는 의료비보다 건강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의료비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해요. 한 달에 50달러씩 보내고, 갚아지면 갚아지는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매년 8,000달러를 여분으로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가격은 오르기만 한다,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반 인스티튜트(Urban Institute) 조사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미국 성인 4명 중 1명이 자신이나 가족이 의료비 빚을 지고 있다고 답했다.

같은 기관의 마이클 카프만(Michael Karpman) 연구원은 "의료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운 본인 부담 비용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의료비는 계속 오르고, 메디케이드와 ACA 관련 연방 지원 삭감이 향후 몇 년에 걸쳐 본격화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카고 대학교의 로버트 케스트너(Robert Kaestner) 교수는 2026년 9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인플레이션이 임금 인상률을 앞질렀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6~7년 정도 살아온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것이다. '와, 모든 것의 값이 올랐구나.' 가격은 오르기만 한다. 절대 내려오지 않는다.” 의료보험도 예외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미국 의료비 부담 현황 요약

지표수치
의료비 감당 가능하다는 성인 비율50% 미만
올해 ACA 가입 포기자300만 명 이상
고용주 가족 보험 평균 연간 비용2만 8,000달러+
2026년 직원 보험료 인상률9% (임금 인상률 3.7%)
2027년 직장 보험 비용 예상 인상률9.5%
의료비 빚 있는 성인 비율약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