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96)이 1965년부터 이끌어 온 시가총액 1조 달러 규모의 복합기업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워런 버핏은 오늘(9월18일)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버크셔는 별도 발표에서 버핏이 즉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되 이사회 구성원 자격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후임 회장은 오래전부터 마련된 승계 계획에 따라 아들 하워드 버핏이 맡는다. 수전 데커는 선임 사외이사직을 계속 수행한다.

버핏은 서한에서 시간의 신(Father Time)은 언제나 이기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했다며, 버크셔의 앞날에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갖게 되는 시점까지 지켜볼 기회를 줬다고 썼다.

CEO 교체 9개월 만… "그레그가 경영, 하워드는 문화 지킨다"

이번 결정은 그레그 에이블(64)이 최고경영자(CEO)를 넘겨받은 지 9개월여 만이다. 버핏은 2025년 5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CEO 퇴진을 처음 발표해 수천 명의 참석자를 놀라게 했고, 이후 회장직만 유지해 왔다.

에이블 CEO는 회사 발표문에서 버핏이 만든 문화와 가치가 버크셔의 중심에 남을 것이며 하워드가 그 수호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핏 역시 서한에서 그레그가 회사를 경영하고 하워드가 문화와 가치를 지킬 것이며, 이 둘은 재무제표의 어떤 항목보다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워드를 두고 주주들이 보유하되 청구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보험증권과 같다고 비유했다.

34세에 인수한 섬유공장, 60년 만에 연 19.7% 수익 제국으로

버핏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기반을 둔 버크셔를 키워 온 궤적은 미국 기업사에서 비교 대상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34세에 쇠락한 뉴잉글랜드 섬유공장을 인수한 뒤 60년에 걸쳐 지난해 영업이익 445억 달러, 직원 약 40만 명의 금융·산업 거대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버핏 재임 기간 버크셔의 연평균 복리 수익률은 19.7%로 S&P500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회장으로서도 활발히 활동… 알파벳 투자 주도

버핏은 올해 회장으로 재직하면서도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에이블 CEO는 지난 3월 CNBC에 버핏이 여전히 매일 오마하 사무실에 출근하며 자신도 자주 조언을 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5월 주주총회에도 참석해 자리에서 짧게 발언하고 CNBC 인터뷰에 응했다. '자본주의자들의 우드스톡'으로 불리는 이 행사가 버핏이 아닌 에이블의 주재로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7월에는 버크셔의 최근 알파벳 대규모 투자를 자신이 주도했다고 CNBC에 밝혔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6월 100억 달러 규모의 사모 지분 매입 이후 애플,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이어 버크셔의 3대 보유 종목이 됐다. 당시 그는 몇 주 전 다리가 부러졌지만 회복 중이라고도 말했다.

버핏은 지난해 추수감사절 주주 서한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읽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지만 주 5일 출근한다며 고령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번 서한에서는 최근 가족, 친구들과 96번째 생일을 보냈는데 막 돌을 지난 증손자가 요즘은 자신보다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농담을 곁들였다.

올해 부진한 주가… 에이블 부담 커져

버크셔 주가는 올해 부진했다. S&P500이 11% 넘게 오르는 동안 버크셔는 1% 상승에 그쳤다. 유가 상승과 고성장 종목 선호 현상이 일부 원인이지만, 주주들은 새 CEO가 버핏만큼 능숙하게 막대한 자본을 운용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버핏의 회장직 퇴진으로 에이블의 성과에 대한 부담은 한층 커지게 됐다.

당장 투자자들은 에이블이 3,655억 달러의 현금 보유고 일부를 자사주 매입에 더 쓰길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2분기 자사주 매입을 45억 달러로 늘렸다.

버크셔 최대주주인 버핏은 서한에서 에이블에 대한 기대가 처음부터 매우 높았지만 그는 이를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훌륭한 손에 맡겨졌으며 앞으로도 주주들과 함께 주주로 남길 기대한다고 서한을 맺었다.

에이블 CEO는 CNBC에 버핏이 자신에게 미국 재계 최고의 일자리라는 막중한 책임과 함께 버크셔의 문화와 가치에 맞게 이끌 재량을 줬다며, 하워드 회장과 데커 선임 사외이사, 버핏과 계속 함께 일하게 돼 감사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