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정제 구리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오늘(9월10일)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백악관이 구리 가격 상승에 따른 제조업 비용 증가 우려와 국내 광산업 육성이라는 잠재적 이익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망설임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행정부가 '체감 물가' 문제에 점점 더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경제 정책이 미국 소비자와 기업의 비용을 낮추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관세 예상에 사재기 몰리며 구리값 사상 최고

구리 가격은 트럼프 대통령이 음극(cathode) 등 정제 구리 제품과 광산에서 생산되는 구리 정광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트레이더와 산업계 구매자들은 새 관세를 피하기 위해 앞다퉈 미국 내 재고를 쌓아왔고, 그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비축량 중 하나가 형성됐다.

한 백악관 관계자는 관세 부과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상무부가 백악관이 정한 6월 30일 시한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를 했다는 점은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행정부는 구리를 비롯한 핵심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가져오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이 기존 관세를 정제 구리로 확대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과 달리, 관세 부과가 기정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반도체·AI 수요 급증 전망, 미국은 제련소 단 2곳뿐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재건과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 축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정책 기조의 일환으로 정제 구리 관세를 검토해왔다. 구리는 건설, 운송, 전자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며, S&P글로벌은 AI와 방위산업 부문의 성장으로 2040년까지 전 세계 구리 수요가 50%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매년 필요한 구리의 약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며, 가동 중인 구리 제련소는 프리포트-맥모란과 리오틴토가 각각 소유한 단 두 곳뿐이다.

관세가 부과되면 수입 구리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 내 채굴·제련·정제 사업의 경제성이 개선될 수 있다. 실제로 리오틴토의 한 임원은 올해 초 로이터에 "현재의 구리 관련 제도와 관세는 미국 내 제련소가 겪는 어려운 경제성을 상쇄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물가는 자극하지 않으면서 국내 생산은 늘려야", 딜레마 속 국제 공급도 위축

반면 폭넓은 구리 관세는 전기설비, 자동차, 건설자재 등 구리를 원자재로 쓰는 제조업체들의 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같은 상충 관계 때문에 행정부는 물가를 자극하거나 '생활비 인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관세로 국내 생산을 유도하려는 시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구리가 미국 외 시장으로 흘러가는 것도 막아 국제 공급을 한층 더 조이고 있다. 구리 생산업체에 투자하는 스프로트자산운용의 광물 애널리스트 제이컵 화이트는 "관세 정책이 정리되지 않는 한, 금속을 국제시장으로 돌려보낼 유인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2025년 데자뷔.. 트럼프, 전면 관세 대신 반제품에만 부과했던 전력

이번 관세 논의는 2025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시장은 구리가 포함된 모든 제품에 대한 전면 관세를 예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7월 그런 전면 조치 대신 배관·전선 등 반제품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데 그쳐 구리 채굴업체들의 반발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6월까지 구리 시장 현황을 보고하고, 2027년 1월 1일부터 15%(2028년 30%로 인상)의 관세를 부과할지 여부를 권고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러트닉 장관이 실제로 어떤 권고를 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정제 구리 수입은 2015년 이후 16배 늘어난 반면, 생산량은 20% 줄었다. 다만 미국 내에는 약 30년치에 달하는 구리 매장량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간 BHP·리오틴토의 애리조나주 '리졸루션 구리' 프로젝트, 안토파가스타의 미네소타주 '트윈메탈스' 프로젝트 등 미국 내 구리 사업 확대를 추진해왔다. 아울러 구리가 포함된 전자폐기물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