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러 나라의 마트에서 냉장·냉동 설비를 겨냥한 해킹 공격이 잇따라 확인됐다. 매장 밖에서 온도를 조절하는 원격 관리 기능이 악용되면서 냉동고 온도가 최고 화씨 131도까지 올랐고, 피해 매장들은 식품을 대량으로 폐기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의 2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ICA와 쿠프 일부 매장, 벨기에에서는 델레이즈 약 40개 매장과 까르푸 15개 매장, 아일랜드에서는 슈퍼밸류 13개 매장이 피해를 봤으며 에스토니아에서도 공격이 확인됐다. 벨기에 몽스의 이케아 매장 내 식당도 냉동고 온도 상승으로 일부 식품을 예방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공격으로 수백만 유로어치의 식품 손실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번 공격은 10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마트 수백 곳에서 비슷한 피해가 발생한 지 약 3주 만이다. 당시 해커는 냉각 장치에 낀 얼음을 녹이는 성에 제거 기능을 원격 조작해 온도를 높였으며, 이번에도 같은 기능이 악용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태 모두 덴마크 기업 댄포스의 온도 관리 장치가 표적이 됐고, 해커는 보안이 허술한 장치에 침입해 여러 냉장고와 냉동고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권한을 가로챘다.

댄포스는 앞서 프랑스에서 피해를 본 자사 장치 대부분이 보안 업데이트가 중단된 구형 제품이거나 오래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산업보안업체 조나시스템스의 빌 무어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기술자가 현장에서 손보도록 설계된 제어장치들이 점점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사태 이후 보안 조치를 마치지 못한 설비도 공격에 노출됐다. 벨기에 냉장·냉동 설비업체 사브코벨은 당시 약 10%의 설비에 보완 조치를 끝내지 못했고, 그중 일부가 이번에 피해를 봤다. 까르푸 측은 프로그램 업데이트와 안전한 통신망 사용 등의 조치로 피해 매장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이번 공격과 프랑스 사태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배후를 자처한 개인이나 단체도 드러나지 않았다. 금전 요구가 없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피해와 혼란을 일으키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부에 노출된 관리 화면에 접속해 설정을 바꾸는 방식은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아 추적이 어렵고, 공격 결과만으로 개인의 소행인지 국가 차원의 조직적 공격인지도 구별하기 어렵다.

크리스토프 한센 유럽연합(EU) 농업·식량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사태를 식량 공급망을 방해하고 소비자 신뢰를 훼손하려는 의도적 시도로 규정했다. 다만 현시점에서 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식품 폐기와 기업 피해는 실질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