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러시아 견제를 위해 군비를 빠르게 늘리는 가운데 친러시아 성향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세력을 넓히면서 유럽 주변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폴란드 정치인과 유럽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독일은 서방 지도자들로부터 경제 규모에 비해 국방비를 적게 부담한다는 비판을 받아오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계기로 재무장에 속도를 냈다. 킬세계경제연구소 집계에서 지난해 독일의 군수 조달 계약액은 영국의 3배를 웃돌았다. WSJ은 유럽 국가 사이를 중재해온 미국이 역내 군사 역할을 줄이려는 상황도 불안 요인으로 짚었다.

이달 독일 동부 지역 선거에서 승리한 AfD는 유럽연합(EU) 탈퇴와 대러시아 제재 해제,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 재개를 주장한다. 나치 시대 범죄에 대한 독일의 반성을 ‘죄책감의 문화’로 규정하며 이를 끝내야 한다는 입장도 내세운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지난주 독일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극우·친러 정당이 재무장한 독일을 장악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폴란드 정치권에서는 AfD 공동대표 알리체 바이델이 2023년 현재의 독일 동부를 ‘중부 독일’이라고 표현한 것을 옛 독일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왔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뒤 동부의 광대한 영토를 잃었으며 1990년 통일 당시 해당 영토에 대한 권리를 공식 포기했다.

AfD 공동대표 티노 크루팔라는 지난해 러시아를 독일의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폴란드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유럽 당국자들은 AfD의 집권 여부를 넘어 독일과 러시아가 유럽의 양대 강국으로 부상하고, 독일이 충돌을 피하려 러시아에 다시 유화적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우려했다고 WSJ은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뒤에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반대 속에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2’를 추진한 사례도 거론됐다.

군수 조달 방식도 갈등 요인이다. 킬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군수 조달 계약 중 약 3분의 2는 자국 업체가 차지했고 다른 유럽 동맹국 업체에 직접 돌아간 물량은 미미했다. 독일이 프랑스·네덜란드와 진행하던 수십억 유로 규모의 공동 사업에서 이탈한 가운데, 카네기유럽의 림 몸타즈 연구원은 프랑스가 방위산업 강국의 지위를 독일에 내줄 가능성을 걱정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군비 증강이 장기간 이어진 국방 투자 부족을 보완하는 데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카미유 그랑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차장보는 주변국의 일부 불만이 과장됐다고 평가하면서도, 동맹의 지지를 유지하려는 독일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리아나 픽스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유럽 공동 조달과 방위산업 협력, 나토 공동 지휘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EU가 공동 차입으로 회원국 방위비를 마련하는 방안에 독일이 동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다만 WSJ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주변국을 달래기 위해 양보하면 국내 민족주의 세력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볼프강 이싱어 뮌헨안보회의 의장은 독일이 군비 확장의 목적을 나토와 유럽에 대한 안보 약속 이행으로 분명히 설명해 동맹국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