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내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6개월 안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 지원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르펜은 파리 16구의 RN 새 사무실에서 진행한 파이낸셜타임스(FT) 14일자 인터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지원을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을 솔직하게, 경고하듯 전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EU의 대러시아 제재에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에너지가 부족한 EU가 러시아를 상대로 에너지 전쟁을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유럽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인지 묻는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르펜이 내세우는 외교 원칙은 독립과 등거리 외교로, 이는 프랑스가 경제·외교·군사적으로 더 강했던 시기에 가능했던 샤를 드골의 비동맹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EU 정책에서는 집행위원회의 권한을 회원국으로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년 스페인·이탈리아·폴란드 총선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르펜은 유럽의 정치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EU 재편 구상은 4년 전 총리가 된 뒤 EU의 정책 기조에 대체로 순응해 온 이탈리아 민족주의 지도자 조르지아 멜로니의 행보와 대조를 이룬다. 르펜은 멜로니를 신념이 확고하고 변하지 않았지만 제한된 환경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자신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싫어하지는 않지만 프랑스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FT는 세 차례 대선 도전에 실패한 르펜이 이번에는 선두 주자로 떠오르면서 어느 때보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 입성에 가까워졌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르펜은 인터뷰에서 지난 40년간의 주류 정책이 프랑스를 심각하게 약화시켰다고 비판하며, 내일을 두려워하는 수천만 명의 프랑스인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입소스가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유권자의 70%가 내년 4월 대선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펜이 1차 투표에서 30% 이상을 얻어 선두에 오르고 5월 결선에서도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FT는 선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전했다. 현재까지의 조사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인물은 극좌 정당 대표 장뤼크 멜랑숑과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다.

르펜은 “우리는 이념가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라며 정부가 비대해졌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 막대한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5년 재정적자 감축 계획은 1400억 유로의 순절감을 약속하지만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경제학자들은 대폭적인 감세가 경기 침체를 초래해, 채권 투자자들이 이미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재정적자 축소 노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을 대폭 줄이고 공공주택과 복지 혜택에서 프랑스 시민을 우선하는 ‘국가적 우선순위’ 정책도 쟁점이다. 반대자들은 이 정책이 분열을 심화시키고 사회 불안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FT는 유럽회의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지도자의 당선이 프랑스를 미지의 영역으로 이끌고 EU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했다.

대선 출마에는 사법 절차도 걸려 있다. 르펜은 유럽의회 의원 보좌진에게 지급하도록 지정된 EU 자금을 RN 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3월 1심과 올해 7월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최고법원인 파기원 재판을 앞두고 있다. 두 재판 모두 집행유예가 붙은 징역형과 피선거권 박탈 판결이 나왔고, 법원은 내년 4월 대선 전에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르펜은 무죄를 주장하며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사건 경위와 법정 공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선거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비판자들은 유죄 판결 뒤에도 출마하겠다는 행보가 트럼프의 전략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르펜은 RN의 극우 성향과 외국인 혐오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해 왔다. FT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창립한 정당의 인종차별적·외국인 혐오적 뿌리는 과거의 일이며, 당을 정화하기 위해 15년간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나치 가스실을 ‘역사의 사소한 부분’이라고 부르는 등 반유대주의 발언을 반복하고 반인도적 범죄를 부인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이유로 2018년에는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했다.

최종 승리를 위해서는 극우 성향을 우려하는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극복해야 한다. 르몽드 의뢰로 베리앙 컨설팅이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40%가 르펜의 정당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봤다.

르펜은 무슬림 여성의 공공장소 히잡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이슬람교나 무슬림 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경쟁자인 멜랑숑에 대해서는 다양한 인구를 찬양하는 ‘누벨 프랑스’라는 비전으로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멜랑숑은 인종차별과 이슬람 혐오에 맞서는 인물로 자신을 내세워 젊은 층과 이민자 출신 유권자를 결집하는 데 전략의 일부를 맞추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자신의 비전이 무엇인지 묻자 르펜은 ‘프랑스를 다시 만나다(Revoir la France)’를 제시하며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은 사라지거나 해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FT는 르펜과 경쟁자들이 내년 대선을 제5공화국 건국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로 본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다고 전했다. 르펜은 이번 선거가 “1958년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