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성지 메카의 모스크에서 외설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방글라데시 출신 20대 남녀 2명을 사형에 처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사형 선고와 집행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며 경위 파악에 나섰다.

영국 텔레그래프 등의 2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메카에서 청소 노동자로 일하던 수에티 악테르(24)와 나즈룰 이슬람(22)의 사형을 집행했다. 두 사람은 2023년 8월 체포됐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라 판사가 재량으로 형량을 정하는 ‘타지르’ 방식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우디 내무부는 두 사람이 모스크에서 외설적 행위를 해 장소의 신성함을 훼손했다며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달 사우디 당국이 방글라데시 영사관에 전달한 수감자 명단에는 악테르의 혐의가 ‘간통’으로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다 주재 방글라데시 영사관은 집행 다음 날인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외무부에 사건 경위와 판결 내용 등을 요구하는 외교 공한을 보냈고, 방글라데시 외교부도 18일(현지시간) 자국 주재 사우디 대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사우디 측의 답변은 아직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가입한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국인이 체포·구금됐을 때 당사자가 요청하면 해당국 영사관에 지체 없이 알리도록 규정한다.

가족들도 사형 집행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악테르는 집행 전날인 13일(현지시간) 가족에게 두 달 반 뒤 귀국할 것이라고 말해 자신의 처형 일정조차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슬람의 사촌은 텔레그래프에 언론 보도로 사형 소식을 처음 접했고 사우디 정부의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집행 경위 조사와 시신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사우디에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약 350만명이 거주하며, 방글라데시 정부 통계상 사우디는 자국민이 해외 취업을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국가다. 사우디 민간 부문 노동자의 약 80%는 외국인으로, 특히 청소·건설 등 저임금 직종에 집중돼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사회 개방 정책과 보수적인 사법 제도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여성 운전과 남녀가 함께 관람하는 공연 등을 허용했지만, 범죄와 형량을 모두 명문화한 성문 형법이 없어 일부 범죄는 판사의 이슬람법 해석에 따른 타지르 방식으로 처벌한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집행된 사형의 최소 47.5%가 타지르에 따른 것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10월 5일까지 사우디에서 최소 175명이 처형됐으며, 이 가운데 외국인이 94명으로 절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외국인 피고인들이 변호사와 통역, 영사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해 왔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7월 마약 밀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진 에티오피아 노동자 5명도 재판에서 변호사와 통역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